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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분양단지 ‘나토 수준 방위’ 러 수용 가능성 희박…‘종전’까진 산 넘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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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작성일25-08-23 09:08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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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분양단지 미국과 우크라이나, 유럽 정상들이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제공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정상회담 추진 등을 논의했지만 이번 회담이 평화협정 체결과 종전으로 이어지기까지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유럽 정상들에게 제시한 새로운 의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집단방위와 비슷한 안전 보장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문제와 미·러·우크라이나 3자 정상회담 추진 등 크게 두 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나토식 안전 보장은 러시아가 거부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CNN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에 가입하겠다는 우크라이나의 야망을 좌절시키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그런 그가 우크라이나에 나토 준회원국 지위를 부여하는 합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이날 백악관 회담을 앞두고 외교부 명의로 “우크라이나에 나토 회원국 군대가 주둔하는 모든 시나리오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유럽과 미국이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나토 수준의 집단방위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간 나토 회원국들은 한 회원국이 무력 침공당하면 모든 회원국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나토 조약 5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꺼려왔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이 미군 파병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러·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성사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개전 이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양자 정상회담 요구를 무시해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통화해 러·우크라이나 양자 및 미국을 포함한 3자 정상회담 구상을 공유한 뒤에도 크렘린궁은 해당 제안이 아이디어 차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이날 미·우크라이나·유럽 회담 테이블에 오르지 않은 영토 할양 문제는 향후 평화협상 과정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평화협상의 핵심 조건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주·루한스크주)를 받고 러시아군이 점령 중인 남부 헤르손과 자포리자 일부를 돌려주는 안을 내걸었다.
러시아가 돌려주겠다고 한 지역의 면적은 약 440㎢에 불과하고 돈바스는 6600㎢에 이른다. 더군다나 러시아군은 도네츠크의 75% 정도만 점령한 상태라 러시아가 말하는 영토 교환은 사실상 ‘우크라이나 땅을 받고 우크라이나 땅을 주는’ 형태다. 우크라이나 영토 할양은 개헌이 필요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이 극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주제라 영토 문제에서 타협하는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타격이 될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중재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문제는 평화협상의 또 다른 복병으로 여겨진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한 내에 러시아가 휴전에 합의하지 않으면 러시아 및 러시아의 무역 상대국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큰소리쳤으나 실제로는 인도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데 그쳤다. 지난 15일 미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선 자신이 추진해왔던 휴전 합의 시도를 중단하고 푸틴 대통령의 영토 요구안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대리인을 자처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으로 유명하다”면서 “트럼프가 젤렌스키 및 유럽 정상들과 회담한 후 마지막으로 대화한 사람은 푸틴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해 우크라이나·유럽 정상들과의 회담 내용을 전달했다.
외신들은 미·우크라이나·유럽 정상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마쳤지만 실질적인 결과물은 없다면서 이는 재앙이 벌어지지 않은 것을 진전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대서양 동맹이 균열돼 있음을 보여줄 뿐이라고 짚었다. 마이클 키미지 윌슨센터 연구원은 CNN 인터뷰에서 이날 회담이 환상과 다름없는 “판타지 외교”였다며 “모두가 판타지에 참여하는 순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디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협상 타결 낙관론을 회의적으로 평가하며 “러시아의 전쟁 외교 행보에 익숙하지 않은 트럼프 정부가 러시아의 발언을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러시아의 입장은 전혀 바뀌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9268개. 공장, 탄광, 지하시설 등 일본 제국주의(일제)가 한반도에 남긴 전쟁유적 숫자다. 문헌과 현지조사 등으로 확인된 곳 중 정부나 지자체 보고서가 발간된 곳은 321개. 일제가 36년간 남긴 상처 중, 약 3.46% 수준이다.
일제강점기 전쟁유적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과 연결되지만 지금껏 채 5%도 조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야만의 시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증언’ 덕분이었다.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폭로한 ‘김학순’,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강제동원 책임을 물은 ‘이춘식’ 등의 증언은 광복 후 수십 년간 역사의 빈틈을 메웠다.
그로부터 80년이 지났다. 생생했던 ‘목소리’는 대부분 멈췄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며 생긴 틈으로 “강제동원도 일본군 ‘위안부’도 없었다. 증언은 거짓이다”는 주장이 파고들었다. 이제라도 멈춰버린 증언을 사실로 확인해야만 할 필요성이 커졌다.
경향신문은 정부가 발간한 구술록 속 강제동원 피해자 219명의 증언을 처음으로 전수 분석했다. 그들의 기억으로 지난 80년간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강제동원의 길’을 복원했다. 전국 역, 관공서, 학교, 여관 등에서 집결한 강제동원자들은 기차를 타고 여수역, 부산역 등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연락선으로 갈아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 주요역과 철도는 이들을 수송하는 핵심역할을 했다. 항구는 이들을 강제동원지로 실어나르는 기지였다.
219명의 기억을 쫓아 직접 따라가 본 길 위에는 참혹한 ‘폭력’의 역사가 있었다.
김희경은 덕수국민학교 고등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4년 7월, 일본 후지코시강재주식회사로 강제동원됐다. 만 14세 때였다. 250명이 함께 동원됐는데 집결지는 ‘경기도청’(현 광화문 광장 남쪽)이었다. 이들은 ‘부민회관’(현 서울시의회)에서 일제를 홍보하는 영화를 한 편 봤다. 오후에는 ‘조선신궁’(현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이동해 참배한 뒤 ‘경성역’(서울역)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남대문을 내려보니까는 요즈음 시청광장에 사람 모이잖아요. 가족들이 그렇게 모여있어요. 아침에 아무것도 없이 나갔는데 도시락들을 싸가지고, 애들을 멕여 보낼라고. 서울역 가는 그 일대가 꽉 차서, 그걸 말로 표현을 못 해요.” 김희경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는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회)가 2008년 발간한 구술집 ‘조선여자근로정신대, 그 경험과 기억’에 나오는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위원회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총 16권의 구술기록집을 남기고, 2015년 해체됐다. 정부가 발간한 책이지만 전권 열람이 가능한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구술집은 잊혔다. 그런데 이 책들에는 어디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가 조각조각 실려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끌려간 ‘이동 경로’에 관한 것이다.
다시 김희경의 증언이다. 경성역에 도착한 그는 그날 저녁 8시, 기차를 탔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비 내리는 새벽이었다. “아마 새벽쯤 됐어, 비가 막 부슬부슬 오는데 250명이 춥고, 앉아가지구선 있는데, 한 아이 두 아이 울기 시작하더니 250명이 다 우는 거야.” 이날 가족품을 떠나 온 아이들이 함께 울었던 곳은 ‘부산역’이었다.
일제강점기 부산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관문이었다. 부산항 제1부두에는 ‘관부 연락선’이 닿았다. “연락선이 단순히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연결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일본에서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면 곧바로 기차로 갈아타고 중국을 갈 수 있다는 의미의 ‘연락’ 입니다. 역이나 항구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거죠,”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소장은 당시 부산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 한반도, 중국을 연결하는 구조의 핵심은 ‘잔교역’이었다. 잔교역은 부두 위에 건설한 간이역을 말한다. 기차에서 내린 승객이 몇 걸음만 옮기면 곧바로 배에 오를 수 있다. 모든 환승과정이 역과 항구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극도로 효율적인 구조지만 뒤집어보면 완벽히 통제된 구조다.
그런데 김희경은 잔교역이 아닌 부산역에서 하차했다. 경부선에서 갈라져 나온 철도가 잔교역과 이어짐에도 부산역에서 하차했다면, 그 이유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일제는 김희경을 비롯한 250명의 아이를 역 밖으로 데리고 나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부산으로 이동해 곧바로 ‘관부 연락선’을 탔을 것이란 추측은 시작부터 깨졌다. 증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김희경의 기억이 부산에 이르러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만 14세 아이가 처음 가 본 도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억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219명의 증언자 가운데 비슷한 시기, 같은 장소를 거친 증언을 전부 찾았다. 그 결과, 1944년 5월 도쿄 누마즈공장으로 동원된 오일순, 1944년 10월 히로시마 조선소로 동원된 홍순의가 특정됐다. 같은 해 5월, 7월, 10월에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끌려간 이들의 기억에서 하나의 장면이 공통적으로 떠올랐다. 이들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인간 소독’이었다.
“자그마한 배를 타고 어느 도섬에 가니께네, 창고 같은 이런 데가 있었어요. 들어가보니까 새카만, 저 소독수라 소독수. 그 안으로 들어가라 하는 거예요”, “어딘지 들어갔는데 아 소독물 저저저, 모야 냄새 지독한 크레졸. 우유물 같이 허연 물에 넣고 소독시키는 거야, 몸을”, “약물로 소독을 했다고 사람을”.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시기 부산에 머물렀지만 마치 한 공간에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이들 증언이 맞다면 ‘강제동원의 길’에는 소독이라는 과정이 추가돼야 했다. 문제는 장소였다. 누구도 소독을 당한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지는 못했다. 다만, ‘소독하러 가는 길’을 묘사한 경우가 있었다. “부산에서 그 오륙도 지나설랑 조금 더 가면 조그만 섬이 있었어요, 그 섬에 들어가서 약물로 소독을 했다고 사람을”(김민경, 1944년 히로시마 기계제작소 동원), “부산 와가지고 지금은 모르겠는데, 어디 섬인데 부산에. 섬에 가서 우리를 소독을 시키는기라”(박군자, 1944년 도쿄 누마즈 공장 동원). 이들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설명은 그곳이 ‘섬’이라는 것이었다.
옛 부산역 근방, 자그마한 배로도 갈 수 있는 거리, 오륙도를 볼 수 있는 방향에 있는 ‘섬’. 1941년 일제가 제작한 부산 시가지도를 구해서 펼치고, 해당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을 찾았다. 딱 한 곳이 나왔다. 부산 ‘영도’다.
일제강점기 영도는 배를 건조하고, 수리하는 조선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현재 ‘깡깡이 마을’로도 유명한 해안가 일대에는 일본인 조선소가 밀집해 있었다. 1934년에는 최초의 도개교(다리 상판 한쪽을 올려 배가 지나갈 수 있게 한 다리)인 영도다리가 건설됐다.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만나는 대교동·남항동 일대와 ‘영도정’이라 불린 봉래동·청학동 일대는 대표적인 일본인 거주 지역이었다.
영도의 산업적 특성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영도에는 조선업을 지탱할 ‘노동력’이 필요했다. 영도에도 강제동원자가 있었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창고 ‘건물’이 있었다면 ‘창고가 있는 섬’이라는 소독 과정을 설명한 증언과 맞아떨어진다.
지난 1일, 영도에서 만난 박호석씨는 이렇게 말했다. “있었습니다. 2층짜리 건물이었는데 해방 후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기도 했습니다. 그 건물을 허물고 1969년에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박씨가 지목한 곳은 부산 영도구 봉래동2가에 있는 ‘봉래 아파트’ 자리였다.
인근 주민들은 이곳을 ‘근로 보국대 기숙사’라고 불렀다. 근로 보국대는 일제가 시행한 강제동원의 한 갈래였다. 위치를 확정하기 위해 마지막 교차검증을 했다. 1952년 미군이 영도를 찍은 사진을 입수해 똑같은 구도로 영도를 촬영했다. 그리고 두 사진을 천천히 겹쳤다. ‘봉래 아파트’ 위로 또 하나의 건물이 겹쳐졌다. 이른바 ‘나가야식 숙소’라고 불리는 기다란 형태의 ‘목조’ 건물. 영도 ‘근로 보국대 기숙사’였다.
영도를 소독 장소로 특정하자 신빙성 없어 보였던 증언도 해석됐다. 홍순의는 “부산 건너 대마도라는 데가 있어, 목선 타고 건너가는데 거기가 얼마 안돼요. 인제 거기에 가서 목욕(소독)하는거요”라고 증언했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 직선거리는 약 50㎞ 정도인데 이른바 ‘쓰시마 해류’라고 불리는 강하고 빠른 해류가 흐른다. 나무배를 타고 가깝다고 느끼며 왕복했다고 보긴 어렵다. 반면, 부산 중구 일대에서 영도까지 최단거리는 불과 200m정도다. 영도다리가 놓이기 전부터 나무배가 영도와 부산을 이었다. 홍순의가 영도를 대마도로 착각했다고 하면, 증언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
그럼에도 반드시 설명돼야 할 의문 한 가지가 남는다. 증언자들이 강제동원 된 시점은 1944년이다. 이때는 이미 영도다리가 있었다. 증언자들은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갔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답은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연구위원이 내놨다. “영도다리를 걸어서 건너면 곧바로 일본인 거주지가 나옵니다. 조선인 징용자는 결코 이곳을 지나가지 못했을 겁니다. 일제는 이들을 미개하고 불결한 존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실제로 일제는 조선인이 ‘전염병’을 퍼뜨릴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했다. 당시 조선총독부 관보, 신문 기사 등에는 “조선인은 불결하고 전염병의 온상”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됐고, 이를 근거로 일본인 전용 목욕탕·공원 등의 출입 제한이 이뤄졌다. 결국, 1940년대 관점에서 보면 조선인 강제동원자가 배를 타야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위원회 조사관으로 소독 과정에 대한 구술을 받은 허광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 소장은 피해자들의 증언 당시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증언을 듣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일본으로 도항하기 직전, 알몸으로 벗겨진 채 소독을 당했다고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그 경험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는지 이미 6~70년이 지났음에도 증언자들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일본인도 소독을 받아야 연락선에 오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습니다.”
영도에서 소독을 마친 이들은 다시 부산항 제1부두로 끌려 나왔다. 그제야 관부연락선을 탈 수 있었다. 덕수초 → 경기도청 → 조선신궁 → 경성역 → 부산역(현 부산 중앙동 교보생명빌딩) → 영도 근로 보국대(봉래 아파트) → 부산항 제1부두(구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 관부연락선 → 일본 시모노세키로 이어지는 강제동원 주요 경로 중 하나가 비로소 완성됐다. 이 길은 1944년 7월, 서울에서 동원된 김희경이 실제로 걸었던 길이다. 구술록에 기록된 1943~44년 서울 출신 강제동원자들도 거의 예외 없이 같은 동선을 밟았다. 답사 결과, 서울 시내 구간은 도보로 약 2시간, 부산역에서 영도 근로보국대까지는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직접 따라가 본 ‘강제동원의 길’은 몇 가지 분명한 의미를 드러냈다. 우선, 도주를 막으면서 목적지까지 신속히 수송하기 위한 최적 경로였다. 예를 들어 집결지로 이용된 여관, 역, 항구는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 있었다.
수송 수단으로 사용된 ‘철도’는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에서 관할 하며 감시와 통제를 극대화할 수 있는 도구였다. 철도는 항구와 함께 ‘일제가 한반도를 근대화했다’는 증거로도 활용된다. 그러나 이 철도 위에서 당시 강제동원자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했다. 김명환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식으로 탈출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42~1945년까지 홋카이도탄광기선주식회사가 노무자 송출 현황을 기록한 ‘부산왕복’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1944년 한 해, 경성역에서 부산역으로 이동하던 강제동원자의 탈출률이 42%에 달했다.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갔다면 설명되지 않는 수치다.
이동 과정의 처우 역시 민족 차별적 성격을 드러낸다. 기차로 이동하면서 “객실에 앉아서 갔다”는 증언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인제 어디다가 싣느냐. 짐차여 사람타는 차에는 안 태우고, 소새끼 태우는 곳간이여. 튀지 못하게 할라고, 그거는 인간 타는 데가 아니에요.” 만 15세에 강제동원된 권석순은 기차 안 풍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화물칸으로 수송한 이들을 소독까지해서 배애 태우는 과정을 종합하면, 일제가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자을 어떻게 인식했는지가 드러난다.
경향신문이 분석한 219명 중 176명은 김희경처럼 자신이 끌려갔던 이동과정을 일부라도 구술했다. 이들이 증언한 경로는 크게 평양/서울/춘천/서산/부여/전주 → 대전역 → 부산역 → 부산항 제1부두 → 관부연락선 → 일본 시모노세키, 익산/군산/장성/순천/순창/고흥 → 여수항 → 관려연락선 → 일본 시모노세키, 목포 유달 국민학교 → 목포 선창 → 소안도/추자도 → 제주도/우도 강제동원 등이다. 독특한 점은 관려연락선이 있었음에도 전라도 지역에서 부산으로 이동해 일본으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이다. 조건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부산에서 출발해 일본으로 가는 정기항로가 경제적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도 “1944년 후반이면 이미 해안선이 봉쇄돼 이동 중 배가 격침될 가능성이 컸다는 점 역시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강제동원자들의 이동 경로, 증언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많다. 그럼에도 이를 활용한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할 수 없었어요. 증언을 정리해 후속 연구가 가능하도록 해야 했지만 그럴 시간도 예산도 없이 위원회가 해체됐습니다.” 위원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한 정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의 ‘증언’을 확인해 객관적 역사로 남기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 광복 후 8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정확히 몇 명이 끌려가서 몇 명이 돌아오지 못했는지조차 모른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투표가 시작된 20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파(찬탄파)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두고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투표했다”며 “조용히 상식의 힘을 보여 달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한 전 대표의 글이 안철수 당대표 후보를 지지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전 대표가 게시물을 올리기 약 1시간 전 안 후보가 페이스북에 “지금 우리 당에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 필요하다. 국민의힘이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상식의 회복’”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상식을 강조한 안 후보의 글에 호응하기 위해 한 전 대표가 ‘상식의 힘’을 언급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친한동훈계(친한계)인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조경태 당대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한 전 대표의 글은 조 후보를 지목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한 의원은 한 전 대표가 글을 올린 지 약 2시간 후 조 후보와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상식의 힘”이라고 적었다. 한 전 대표 의중이 안 후보가 아닌 조 후보로 향했다는 것을 한 의원이 밝힌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한 전 대표는 지난 16일 “상식적 후보들의 연대와 희생이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며 찬탄파 후보들의 단일화를 촉구했다. 조 후보는 공개적으로 안 후보에게 단일화 의사를 요구해왔다. 안 후보가 이에 호응하지 않으면서 단일화는 무산됐다.
경북 청도에서 열차가 철로 주변 시설물 안전점검을 위해 이동 중이던 노동자들을 치어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와 관련, 전국철도노동조합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철도노조는 19일 성명을 내고 “이번 사고는 2019년 밀양역 사고와 판박이”라며 “밀양역 사고 이후 운행 선상에서 이뤄지는 죽음의 상례 작업(열차 운행 중 시행하는 선로 유지보수 작업)은 중단됐지만 위험지역을 벗어 난 선로변 작업은 여전히 상례 작업으로 진행됐고 결국 작업자들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열차가 다니는 주간에는 운행선을 차단하고 작업하지만, 인접선은 여전히 열차가 다니는 상황으로 이에 대한 안전조치가 없는 실정”이라며 “지난해 구로역 사고가 인접선 운행 열차와 충돌해 발생한 대표적 사례로, 코레일은 사고 직후에야 인접선도 차단하는 조처를 했다”고 지적했다.
철도조노는 “더는 땜질식 처방은 안 된다”며 “현장을 잘 아는 노동자가 참여해 총체적인 안전 점검을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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